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말레이시아]] 내의 [[중국인]] 공동체는 [[역사]]가 오래되었다. 중세 때인 [[명나라]] 때부터 [[말레이 반도]]와 주변 [[섬]]들로 주로 [[푸젠성]] 및 [[광동성]], [[하이난성]] 출신 중국인들이 이주했다. 이들은 툭하면 푸젠 등 남부 연안에서 약탈을 벌이는 [[왜구]]를 피하여 그리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흉년을 피하여 남하했다. 이후 [[명나라]]가 [[만주]]에서 새로 일어나는 [[청나라]]에 의해 요동을 상실하고 청이 [[내몽골]]을 정벌해 [[몽골 고원]]을 장악한데 이어 [[이자성의 난]]으로 명이 비참하게 멸망한 뒤 명나라를 이은 [[남명]]에 충성하던 남방 푸젠인들과 객가인들이 [[만주족]]의 [[청나라]]를 피해 남하했다. 그리고 북방에서 내려오는 [[만주족]] 및 [[몽골족]]을 피해 [[베트남]], [[태국]], [[미얀마]], [[필리핀]] 등지로 흩어졌고, 개중에 [[말레이 반도]] 일대로 이주한 [[사람]]도 있었다. 남명은 단명했고 [[동녕 왕국]]도 3대만에 간판을 내리며 이렇게 만주족을 피해 남방으로 도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.[* [[변발]]을 강제하는 치발령을 피해 내려가는 사람도 많았다. 치발령을 위반한 마을은 마을 전체를 몰살했기에 그렇다.] 이후 [[19세기]]에 [[노예 무역]]이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[[말레이 반도]]가 [[영국]]의 지배를 받은 뒤에 [[주석(원소)|주석]]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해진데다가 [[아편전쟁]]에서 승리한 영국이 [[말레이 반도]] 내 주석광산 노동력을 [[중국인]] 저임금 미숙련공인 [[쿨리]]들을 이민으로 받아 채우기로 하자 현재의 말레이시아인 [[말레이 반도]]와 부속도서인 [[싱가포르]], [[페낭]], [[사바(말레이시아)|사바]] 일대로 [[청나라]] 남방 출신 [[쿨리]]들이 많이 이주했다. 특히 [[청나라]]가 망조든 [[19세기]]부터 이민이 활발하였는데 이는 중국 내부의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. [[1790년대]] 3억 명이던 [[청나라]] 인구가 [[1850년]] 무렵 4억 2천만여 명으로 급증하면서 [[쌀]] 가격이 폭등하였고 [[인플레이션]] 효과로 실질소득이 줄어들었다. 납세 수단인 [[은]]과 관련하여 청나라 [[조정]]은 [[동전]]을 평가절하하면서 농민들의 생활 조건은 더 악화되었고 이 때문에 [[소작농]] 상당수가 말레이시아 주석 광산으로 이동하게 되었다. [[1940년대]]에 영국령 말레이 반도 식민지가 [[태평양 전쟁]] 연간 [[일본군]]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 이 곳을 점령한 [[일본군]]은 중국계 [[커뮤니티]]를 탄압한 적이 있었다. 이 때 화교 [[학살]]도 벌어졌으며 위안부로 끌려간 화교 [[여성]]들도 많았다. 현재야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고 [[일본/문화|일본 문화]]가 [[인기]]를 끌면서 겉으로 반감이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[* '외국인 학교'가 아니므로 말레이시아의 국가 교육과정에 의해 편찬된다. 단 언어가 중국어일 뿐이다. 중국본토나 대만 교과서를 가져다 쓰지 않고 말레이시아 자체 교과서를 쓴다. 그래서 중국어는 중국언데 잘 보면 중국 느낌이 안 난다.] 에선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소개하며 날을 세운다. [[일본]]이 말레이 반도 [[화교]]들을 탄압한 이유는 [[중일전쟁]]으로 적성국가가 된 [[대만|중화민국]]과 이들 화교들이 교역했기 때문으로 화교들을 잠재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학살하고 괴롭힌 것이었다. 그러다가 [[1945년]] [[원자폭탄]] 2방에 일본이 나가 떨어지면서 [[영국군]]이 말레이 식민지를 탈환, 수복하면서 일본군은 전원 쫓겨났고 화교들 역시 탄압에서 벗어났다. 이렇게 일제에서 해방된 후 말레이 반도는 다시 영국령으로 반환되었다. 이후 [[1959년]] 말레이 연방이 [[영국]]에서 독립했다. 그러나 말레이시아 내에서 말레이계와 화교 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결국 [[1965년]] 다시 말레이 연방에서 중국계가 많은 [[싱가포르]]가 등 떠밀려 독립했고 [[1969년]]에 말레이시아에서는 반화교 폭동까지 일어났다. 이는 말레이계가 중국계에게 경제력에서 뒤쳐지던 상황에서 [[야당]]이 [[총선]]에서 선전하자 화교들이 정치권까지 장악하는거 아니냐는 공포에서 나온 것으로 이 때문에 이 시절에 말레이시아 내의 중국계 커뮤니티는 큰 피해를 입었다. [[부미푸트라 정책]]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래로 중국계의 경제적 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 말레이인이 경제권의 일부를 나눠가지는 식으로 [[타협]]을 보게 되었고 중국계는 [[경제]], 말레이계는 [[정치]], 인도계는 [[군대]] 및 [[경찰]], 공직 등으로 각각 영역을 나누게 되어 현재는 좀 나아졌다.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감정이 좋지 않으며 이는 인도계와 말레이계도 마찬가지라서 이는 말레이시아 [[사회]]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